써스펙트 The Pledge (숀펜 영화) by sid

<스포일러 있습니다>




2001년도 영화라 좀 된 거다. 그리고 숀 펜 감독, 연쇄살인범 소재다.


넷플릭스에서 <세븐>을 조금씩 다시 보는 중인데 유사한 영화로 추천돼서 보게 된 영화.


처음 들어본 영화고 사람들이 많이 안 본 영화 같다.




한마디로 . . .한마디로 정의하기까지 며칠 걸렸다. 그만큼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게 뭔지 잡힐 듯 잡힐 듯 잘 안잡힌다.




과거 좀 날리던 할배 형사가 은퇴 후 살인범 잡겠다고 오바하다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일말의 동정 없이 보여주는 개냉정한 영화다. 잘못된 선택이 겹쳐 최악의 경우가 된 내용이라고도 볼 수 있다. 분위기와 설정은 장르적으로 보면 <세븐>, <윈드리버>, <툼스톤>, <트루 디텍티브>와 유사하다. 역대급 사이코패스가 연상되는 엽기적 살인사건, 악마의 탄생을 직감하고 그를 잡으러 가는 중년 독신 베테랑 형사/탐정/사냥꾼의 이야기. 자신만의 공간이나 원칙이 있고 집중력이나 의지, 직감이 뛰어나고, 악에 대한 묵직한 분노나 인간적 카리스마를 지닌, 보통 아닌 기술과 직관의 사람들이다. 그런데 여기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정말 현실적인 보통 사람이라는 점이 반전. 곧 은퇴와 함께 ‘남성독거노인, 전직 경찰’로 내동댕이쳐질 한 그냥 보통의 할배 형사—노련했다고는 하지만—가 피해자와 가족들을 만나 갑자기 죄책감과 소명에 불타오른다.



자극적인 장면도 있고 연출이 쫀쫀해서 몰입도가 크긴 하지만 결론은 보고 나면 멘붕, 허탈, 허무, 찝찝함이 여느 영화보다 크다. 영화가 아닌 현실은 이렇다! 라고 보여주려 한 영화일까? 아니면 숀 펜 답게, '왜 내가 니들 입맛에 맞는 영화를 만들어야 하지? 후훗. 네 욕구는 하나도 충족되지 않을 영화를 한번 보여주지'의 심보같다. 일단 특정 장르에 규정되지 않고자 노력해서 자꾸 애매함을 심어준다. 특정 장르물처럼 가다 자꾸 어깃장을 놓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시원하게 장르물로 보고자 하는 안일한 관객에게 찜찜함을 안긴다. 또한 주인공에 대한 관객의 기대와 동정심 또한 내동댕이쳤다. 나는 영화 속 니콜슨 할배가 어찌나 안 돼 보였는지 영화의 결말을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기도 했다. 추가로, 생각, 의심 많고 편집, 집착 끼 있어 주인공과 동일시되는 사람은 후폭풍이 좀 더 셀 수도 있다. 심리 스릴러, 연쇄살인범, 탈장르적 내용, 잭 니콜슨 좋아하는 사람은 볼 만하다.



영화의 백미가 있다면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래저래 낚시와 그물을 쳐놓은 다음, 드디어 '그놈'이 쏙 들어와 잡히길 기다리는, 막판 약 5분 여의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손에 땀을 쥐게 하다가 대파국에 이르는 호흡이 괜찮다. 




하지만 언급했듯, 거기까지 갈 때까지 이게 도대체 어떤 영환지 생각하느라 바쁘고 힘이 빠진다. 영화 좀 봤다하는 사람들이 더 쉽게 걸릴 함정인 거 같은데, 중반 이후까지 감독이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지? 란 질문을 계-속 하게 된다. 은퇴 노년을 좀먹는 집착의 위력? 진실을 추구한 자에게 비극을 안기는 운명의 장난? 연쇄살인마에 대적하는 형사의 고군분투? 구원자라는 덫에 자기도 모르게 걸려버린 남자? 전혀 어려운 영화는 또 아닌데도 말이다. 즉, 영화는 재미없는 건 아니지만 않지만 오, 나름 좋은 영화다,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장르를 파괴하고자 하는 그 반항적 목적에만 지나치게 충실해서 필요한 것도 뺀 느낌이라 전체적인 일관성이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 뻔-한 거 싫은 건 알겠는데, 뻔한 거 뺀 대가로 개연성이 부족한 느낌.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이렇다. 예를 들어 원제가 The Pledge로 ‘맹세’, ‘서약’ 등의 뜻인데, 주인공이 그 맹세에 집착했던 이유가 내면의 어디와 맞붙었는지 알아야 으응, 그렇구나 하는데, 그런 내용이 없다. 남달리 정의감이 투철했는지, 유달리 희생자에게 연민이 많았는지, 그런 주인공의 무엇이 복선이라도 보여지지 않는다. 왠지 모를 클로즈업은 무지 많은데 주인공이 어떤 공간에서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의 내면세계가 보이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한 유사한 주인공 영화들은 모두 주인공의 사적 세계, 사생활을 어떤 식으로든 보여준다. 그래서 주인공이 왜 저러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이 영화는 주인공이 은퇴 자체를 부인한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 반동으로 그런 지나친 선택을 하게끔 만드는 이유에 대해 주인공의 역사가 묻어나는 디테일한 내용이 없다. 심리묘사가 주인 영화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필요한 묘사가 빠져있다.




또한 잭 니콜슨이란 배우도 그렇다. 잭 니콜슨, 하면 <샤이닝>의 그 악마적 광기와 카리스마의 배우 아닌가. 그나마 소프트하게 나온 <성질 죽이기>나 <이보다 더. . >에서도 뻔뻔한 민폐 카리스마였고. 그런 역할 기대가 큰 배우라 아, 이 영화에서는 평범하고 심지어 조금 얼빠진 역이었구나, 를 깨닫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한마디로 <파고>의 그 얼빵한 아저씨 -- 죄송, 유명한 배우인 건 아는데 이름이 갑자기 -- 를 잭 니콜슨이 연기하려 했다는 거다. 악마의 생각조차 읽어버릴 듯한 잭 니콜슨이 "뭐지? 어 이건 뭐여?"하는 어리숙함을 표현하기가 좀 어려웠나보다. 아무리 애써도 경찰보다는 범죄자 쪽에 가까운 분인 거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약간 로봇같다. 그냥 표정이 없달까. 우연으로 1년 뒤 <어바웃 슈미트>에서도 은퇴노인을 맡는데, 이 영화에 이르러서야 깊은 느낌이 더해져 어떤 중년의 무력한 공허한 표정이 완성된 것 같다.




별로 언급하고 싶진 않은 부분이지만 출연진이 장난 아니게 호화판인 것도 현혹시킨 요인이다. 그러나 부.질.없.다. 헬렌 미렌, 미키 루크, 베네치오 델 토로, 애런 애크하트를 한 영화에서 볼 수 있지만 델 토로-애크하트 빼고는 각 배우 간 케미는 커녕 헬렌 미렌, 미키 루크, 베네치오 델 토로, 애런 애크하트 모두 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꽤 민망한 연기를 볼 수 있다. 매우 심각한 장면인데 웃음이 터질 정도로 망한 연출도 한두 번 있다. 아, 맞다. 음악도 무려 한스 짐머인데, 심지어 음악도 이상하다. 이 정도면 완전체. 그래도 끝까지 뭐지?뭘까 . .뭐지?뭘까 하면서 보는 재미는 있는 이상한 영화다.




2001년도 영화에 2시간이면 긴데, 한줄로 요약하면 긴 시간을 공들여 주인공에게 엿을 먹이는 고약한 내용이다. 숀 펜은 교훈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내 성향상 굳이 교훈을 찾는다면 주제를 알라, 랄까. 은퇴했으면 다음 세대에 넘기고 그동안 해놓은 것 잘 지키며 살아라 정도? 이런 면에서 분위기는 많이 다르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토미 리 존스와도 비교할 만하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그 지역 보안관으로 존경받고 가정도 있는 현명한 노인으로 분한 토미 리 존스도 불쑥 나타난 악마 같은 놈을 별달리 손도 못 쓰고 놓치지만, 최소한 가족과 가족의 안전을 담보 잡히진 않는다. 어찌보면 무력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순응하는 지혜일 수도 있는 것이다. 


덧글

  • 로그온티어 2018/06/10 18:42 # 답글

    많이 안 본 건 아닐 겁니다. 비디오로 시리즈화 되었고, 잡지에도 많이 기고되었던 영화니까요...
  • sid 2018/06/10 19:35 #

    하긴, 2018년에 접해서 그렇지 당시로는 꽤 수작평을 들었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관련 평을 어디서 좀 볼 수 있을까요? 다른 분들 감상이 궁금합니다
  • 로그온티어 2018/06/10 22:01 #

    당시엔 친척이 영화를 좋아해서 비디오 소개잡지가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잃어버려서요.
    그때가 제가 어릴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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