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ving Neverland에 대한 반응 - 마이클 잭슨 by sid

<Leaving Neverland>는 4시간짜리 다큐로, 마이클 잭슨의 꼬마팬 자격으로 네버랜드에 초대됐다가 성추행 당했던 남자(당시는 아이) 2명과 그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철저히 그들의 시각으로 담은 작품이다. 최근 HBO에서 4개로 끊어서 시리즈로 방영했나보다.

지난 선댄스에서 첫 상영 때도 경찰 경비 풀 정도로 상영 전후 반응들이 장난 아닌듯. 느낌엔 상영 전엔 어디 감히 이런 영화를!!! 모함이다!! 였는데 막상 영화 내용이 거짓이기엔 너무도 적나라하니 이건 뭐 빼박이네... .하고 할 말을 잃은 것 같이 보인다.
영화 내용에 대해 읽어보면 성적으로 건드린 게 맞구나가 아니라 대놓고 유린한 수준에 가까운 것도 충격적인 듯 하다.
과거 동일한 소행에 대해 법적으로 무혐의 처리된 사실은 장장 4시간의 폭로 앞에서 그냥 있으나마나한 판결이 되어버린 것 같은.

숱한 동침은 물론 오럴과 비밀 결혼식... 뭐 그런 내용들이 담긴 듯하다.
좀전에 오프라 윈프리까지 이건 진짜 다시 생각해봐야할 문제라고 언급했나보다.

옛날 한창 잘나갈 때 애들 초대해서 같이 자고 놀고 한단 얘기에 굳이 그렇게 꼭 같은 집에 살고 같이 자기까지 해야 되나.. 참 유별나네,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긴 하다. 성추행 의혹에도 뭐, 그렇게 심했겠나,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전무후무한 스타일을 좋아했는데... 뭔가 한숨이 나올 뿐이다.

다른 성폭력 연루된 미국 연예계 유명인사들도 떠오른다.
이미 명백해진 알 켈리와 빌 코스비, 지금 소송 진행 중인지 모를 브라이언 싱어와 케빈 스페이시, 어찌저찌 피해갔는가 싶은 우디 앨런(결혼식 놀이가 아니라 결혼까지 했네 이분은), 나아가 아직 조사 중인 코스모스 진행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까지...

씁쓸---하다.


 

덧글

  • 2019/03/10 23:33 # 삭제 답글

    5. 2019년 아동성추행 논란 다큐 개봉[편집]
    파일:세이프척 롭슨.jpg
    사건 당사자인 제임스 세이프척(왼쪽)과 웨이드 롭슨(오른쪽)의 어린시절.
    19년 1월 25일 수많은 논란 끝에 독립영화제인 선댄스 영화제에서 마이클에게 새로운 아동성추행 의혹을 제기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리빙 네버랜드(Leaving Neverland)>가 개봉했다.[21]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2명의 남성으로 웨이드 롭슨과 제임스 세이프척이다. 롭슨은 82년생 호주 출신으로 5살 때 댄스경연 대회에서 우승하여 마이클과 만나게 됐다. 롭슨은 90년에 미국으로 건너 갔고 네버랜드로 초대받았는데 이후 97년까지 마이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한편 78년생인 세이프척은 87년 마이클과 함께 펩시 광고를 찍은 것이 인연이 돼 교류하다가 88년부터 92년까지 마이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사실 이들은 마이클 생전에 아동성추행 의혹이 있었을 때마다 열렬히 마이클의 결백을 주장했었다. 그러나 롭슨은 12년에 신경쇠약에 걸리고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마이클이 자기에게 했던 행동들이 성학대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며 13년에 마이클 재단을 상대로 15억 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이시기 세이프척도 롭슨을 보면서 자기도 당했던 것 같다며 뒤이어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둘의 소송은 모두 기각됐다.[22] 이번 다큐는 바로 이 싸움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다큐는 많은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주된 이유는 댄 리드 감독이 주장하는 것처럼 롭슨과 세이프척이 성인이 된 이후 서로 만난 적이 없음에도 진술이 유사하고 구체적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어떤 확실한 물증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성학대 피해자들이 스스로 증거를 마련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도 많은 만큼 결국 모든 것은 이들이 재판 이후 주장한 진술들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느냐에 달릴 것이다. 그리고 현재 몇 가지 의문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앞서 말했듯이 감독은 롭슨과 세이프척이 성인이 되고 다큐를 찍기 전까지 서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들이 의견을 주고받을 여지가 없었고 이점이 바로 다큐의 신뢰성을 보장한다고 주장하지만 16년 12월 12일자 재판 문서를 보면 롭슨은 이미 세이프척과 14년 초에 만난 적이 있다고 스스로 진술한 바 있다. 감독은 16년에 다큐를 구상해서 17년 2월에 롭슨과 세이프척을 찾아가 처음 인터뷰했다. 롭슨과 세이프척은 또 같은 변호사인 빈스 피날디(Vince Finaldi)를 선임했다.
    파일:롭슨 16년 진술.jpg
    세이프척과 마지막으로 대화한 시기가 언제냐는 질문에 14년 초라고 답하는 롭슨.
    세이프척이 성추행을 당했다고 지적한 시기와 장소도 완전히 모순된다. 16년 9월 19일자 재판 문서를 보면 세이프척은 마이클이 배드 투어로 프랑스에 있었던 88년 6월에 파리의 한 호텔에서 처음 성추행을 당했으며 이후 배드 투어가 완전히 끝나고 89년 2월 뉴욕에서 열리는 그래미 시상식에서 마이클이 공연을 했는데 이때도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89년 그래미는 뉴욕이 아니라 LA에서 열렸으며 마이클은 이때 공연하지도 않았다. 그래미가 뉴욕에서 열리고 마이클이 공연한 때는 88년 3월이다. 세이프척이 설사 헷갈렸다고 치고 그래미 일화를 88년 3월로 정정한다고 해도 이미 88년 6월이 첫 성추행의 시작이라며 호텔에서의 구체적인 상황까지 묘사했기 때문에 진술을 통째로 바꿔야 한다. 88년 3월은 또 세이프척이 고소장에서 아직 자신의 어머니가 마이클과 같이 자는 것을 허락하지도 않았던 시기라고 적은 때이다.
    파일:88년 6월.png
    88년 6월에 파리에서 처음 성추행을 당했다고 진술.
    파일:89년 2월.png
    89년 2월에 그래미 시상식이 뉴욕에서 열렸고 마이클이 공연했다는 허위사실을 진술.
    세이프척은 13년 5월에 롭슨이 마이클의 성학대를 폭로하고 소송을 거는 과정을 보면서 본인도 똑같이 마이클에게 당했었다는 사실을 드디어 깨달았다고 고소장에서 밝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감독의 말은 또 다르다. 18년 3월 1일 감독은 <Today Show>와의 인터뷰에서 혹시 롭슨과 세이프척이 마이클의 성학대 사실을 이전에 다른 누군가에게 알린 적이 있냐는 질문에 세이프척은 09년에 어머니에게 이미 그것을 고백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다큐에서 실제로 세이프척의 어머니는 마이클이 사망한 날에 이젠 더 이상 마이클이 다른 아이들을 헤칠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에 기뻐서 춤을 췄다고 인터뷰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은 이들의 얘기과는 또 완전히 다르다. 미첼 베클로프 판사는 세이프척이 05년에 이미 본인이 성학대를 당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어머니에게도 알렸다고 판단하며 그렇다면 그때부터 60일 이내에 소송을 제기했어야 했는데 14년에야 소송을 제기한 것은 기간이 한참 지났다고 봐 소송을 기각했다. 판사가 이런 판단을 한 이유는 세이프척의 고소장에 적혀 있는 05년 개빈사건 당시 마이클이 재판을 받고 있었을 때의 일화 때문이다. 세이프척은 마이클과 그의 법률팀이 마이클의 결백을 주장하는 증언을 하라고 본인과 어머니를 압박했으나 둘 다 거절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세이프척은 혹시 무슨 일이 있었나 걱정하는 어머니에게 마이클을 'Bad man', 'He's not a good person'이라고 지칭하며 마이클과 본인 사이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으나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혹시 자신이 성학대 받았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알게 될까 두려웠다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어머니가 이미 그것을 눈치 챘으면서도 겉으로 티를 안 내는 것 같았다고도 적었다. 그는 이렇게 05년에 이미 성학대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밝히며 13년 5월에야 비로소 깨달았다는 자신의 주장을 뒤집었다.

    증언 압박 일화에서 모순은 또 있다. 세이프척은 형사재판이 끝나갈 무렵까지도 마이클의 이러한 협박이 계속됐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05년 2월 ~ 6월까지 열렸던 형사재판에서 세이프척은 이미 3월 28일 재판부의 증인 채택 절차에서 증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마이클이 세이프척에게 성학대를 가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거나 이를 증언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또 세이프척은 예전부터 마이클의 결백을 주장해 왔었기 때문이다. 당시 재판 문서 참고.
    파일:세이프척 재판.jpg
    어머니가 성학대 사실을 알게 될까 두려웠다고 적혀 있는 세이프척의 고소장.
    파일:세이프척 증인.png
    형사재판 초기에 이미 세이프척은 재판부에 의해 증인에서 제외.
    세이프척은 다큐에서 성추행이 일어났다는 장소로 마이클의 침실 뒤쪽에 3단 잠금장치가 설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소위 '비밀의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에 일부 언론들은 이 비밀의방이 마치 이번에 새롭게 처음 드러난 것처럼 보도를 했지만 사실은 이미 03년 개빈사건으로 압수수색을 받았을 때 진작에 언론에 공개된 방이다. 당시에도 경찰은 이 방에서 무언가 불법적인 일이 자행되진 않았을까 의심했지만 재판 결과는 무죄였다. 마이클이 네버랜드를 떠나고 물건을 다 빼놓은 방의 모습이 주로 언론에 공개되고 있는데 사실 이 방은 원래 피규어, 장난감, 책, 마네킹, 옷 등 온갖 잡동사니들로 꽉 차 있었다.

    비밀의방에 대해서는 웨이드 롭슨의 어머니인 조이 롭슨이 16년 9월 30일자 재판에서 증언한 것도 있다. 조이는 네버랜드에서 마이클과 함께 지냈을 때 비밀의방을 본 적이 있으나 그것이 정확히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는 잘 몰랐다고 한다. 다만 무언가 집에 문제가 생겨 누군가 마이클을 찾을 때 마이클이 몸을 숨길 수 있는 세이프룸(safe room)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또 한번은 마이클이 밖에 있을 때 자기에게 전화를 걸어 그 방에 서랍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돈이 있다며 그것 좀 갖다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고도 밝혔다. 비밀의방이 있는 마이클의 침실이 잠겨 있었기 때문에 키의 위치까지 알려주면서 말이다. 조이는 비밀의방에 대해 어떤 이상한 점을 느꼈다던가 이런 얘기는 하지 않았다. 만약 비밀의방이 정말로 마이클이 은밀하게 아동성범죄를 저지르는 장소였다면 상식적으로 이런 일화를 들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파일:Secret room2.jpg
    마이클이 네버랜드를 떠나고 텅 빈 비밀의방.
    파일:Secret room.jpg
    온갖 잡동사니들로 가득 차 있었던 비밀의방.
    롭슨은 마이클의 회사인 <MJJ Productions>과 <MJJ Ventures>를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아동 성학대 조달 및 촉진 단체' 그리고 마이클의 개인비서였던 노르마 스타이코스는 이러한 역할을 보조하는 마담이었다고 주장한다. 본인이 우승했던 87년 댄스경연 대회 역시 이 회사들이 주관했으며 마이클이 이런 식으로 아이들과 인연을 맺은 뒤 돈과 달콤한 꾀임으로 유인한다는 것이다. 90년에 롭슨 가족이 미국으로 간 후 이주를 결심한 것 역시 마이클의 개인비서와 회사가 "마이클이 롭슨을 몹시 보고 싶어한다"는 구실로 먼저 자기들을 끌여들였기 때문이며 이는 사실 마이클이 본인을 항시 곁에 두고 성추행하기 위한 숨은 계략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은 많이 다르다. 먼저 87년 해당 댄스경연 대회를 주관한 것은 펩시, Target 그리고 CBS 레코드사이며 <MJJ Ventures>는 91년에 세워진 회사라 87년 당시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87년에 롭슨이 대회에서 우승하고 마이클을 잠깐 만나긴 했지만 이후 2년 간은 연락이 끊겼고 이 기간 동안 롭슨의 어머니인 조이 롭슨은 수차례 마이클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답장을 받지 못했다. 90년에 와서야 조이가 호주 방송사에 문의해 <MJJ Productions> 회사의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미국에서 마이클의 개인비서와 연락이 닿았고 이렇게 롭슨이 다시 마이클과 만날 수 있었다. 또한 롭슨 가족에게 이민을 제안한 건 마이클이 아니라 반대로 조이의 남편인 데니스가 아들의 미래 커리어를 위한다는 이유로 처음 생각을 꺼냈고 그 후 조이가 마이클에게 이민을 도와달라고 요청하면서 마이클이 이에 응하여 도와줬던 것으로 밝혀졌다.[23] 다음은 17년 12월 19일자 재판 판결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파일:경연대회 후원사.png
    펩시, Target, CBS 레코드사가 87년 댄스경연 대회를 주관.
    파일:롭슨 엄마.png
    마이클에게 먼저 다시 접촉하려고 하고 이민도 도와달라고 한 사람은 롭슨의 어머니.
    롭슨은 12년 5월에야 자신이 마이클로부터 성학대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주장한다. 05년 형사재판에서 마이클의 무죄를 주장하며 증언을 했던 것도 그때는 그게 잘못된 것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그런데 롭슨의 이러한 주장은 조이의 증언 내용과 완벽히 배치된다. 조이는 롭슨이 자기에게 처음 성학대 사실을 알린 후 05년 재판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준 적이 있는데, 롭슨이 사실은 증언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도 "진실을 알리기엔 너무 수치스러워서" 마지못해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증언 일화가 다큐에서는 또 좀 다르게 나온다. 롭슨은 처음엔 증언하기 싫었고 자기가 사실대로 말하는 순간 마이클이 감옥에 갈 것도 알고 있었으나 본인과 마이클 사이에 있었던 성적 행위들을 학대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또 마이클을 사랑했기 때문에 일부러 거짓 증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증언하기로 마음먹은 결정적인 계기도 있었다고 롭슨은 밝혔다. 증언 전에 롭슨 가족이 네버랜드에서 마이클 가족과 함께 식사 자리를 가진 적이 있는데 마이클의 딸인 패리스 잭슨이 이때 마이클에게 매달려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이들을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이클의 조카인 타지 잭슨은 이 일화에 대해 본인도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고 밝히며 이 식사 자리는 롭슨의 증언 전이 아니라 증언 후에 일어난 것이라고 반박했다.[24] 타지의 반박이 있은 후 영국의 채널4는 이 식사 일화를 통째로 편집하고 다큐를 방영했으며 현재 롭슨은 타지의 반박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는 상태다.
    파일:조이롭슨5.jpg
    05년 증언 당시 롭슨이 진실을 말하지 못했던 이유는 수치스러웠기 때문이라는 조이.
    파일:웨이드롭슨5.jpg
    그러나 정작 롭슨은 05년 당시 마이클과의 관계가 잘못된 것인지 몰랐고 수치심도 느끼지 못했다고 진술.
    롭슨이 처음 성추행을 당했다고 지적한 날도 수차례 바뀌었다. 소송 제기 전 롭슨이 마이클의 성학대를 폭로하겠다며 저술했으나 끝내 출판되지 못한 <Tell-All>이란 책의 초안에는(1, 2) 네버랜드에서의 첫째날과 둘째날은 문제 없이 지나갔고 가족들이 그랜드 케니언으로 간 후 마이클과 단 둘이 남았을 때 성추행이 일어났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후에 고소장에서는 둘째날 밤에 가족들이 마이클의 침실 위층에서 자고 본인은 마이클과 함께 아래층에서 잘 때 성추행이 시작됐다고 말을 바꿨다.[25] 그런데 18년 <Inside Edition>과의 인터뷰에선 또 마이클과 함께한 모든 밤에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추행이 일어났다고 한다.

    또한 고소장에서 롭슨은 첫째날엔 그의 3살 위 누나인 찬탈과 함께 마이클의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잤으나 둘째날에는 찬탈이 마이클을 불편해 하며 위층에서 따로 잤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05년 개빈사건 때 찬탈이 증언한 내용과 완벽히 반대되는 얘기다. 찬탈은 오히려 첫째날엔 마이클과 같이 자지 않았고 둘째날이 돼서야 비로소 마이클이 편안하게 느껴져 같이 잤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롭슨은 고소장에서 또 마이클의 침실에 누군가 접근하면 울리는 경보장치가[26] 있었고 마이클이 방 안에 있을 땐 아무도 방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룰도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조이와 찬탈의 05년 증언과 완벽히 배치된다. 이들은 마이클의 방에 언제 어느때든 제한 없이 들나들 수 있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롭슨의 주장은 가족들의 과거 증언과 상충되는 부분이 많다. 롭슨의 주장이 사실이 되려면 결국 마이클이 롭슨뿐만 아니라 조이와 찬탈에게도 허위진술을 강요했고 이들이 이에 굴복해 증언했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마이클이 무죄 판결을 받은 날 조이는 분명 이렇게 입장을 밝혔다. "우리는 울고 소리 지르고, 또 울고 소리 질렀어요." 조이와 찬탈의 05년 5월 6일자 증언 문서 참고.
    Q: Did you go into Mr. Jackson’s room at all hours of the day?

    A: At any time I wanted to, yes.

    Q: Did you ever get the feeling that somebody was trying to keep you out of Mr. Jackson’s room?

    A: No.
    05년 5월 6일자 조이 롭슨 증언.
    조이의 05년 증언 내용 중에 또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네버랜드에서 마이클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지 않았냐는 검사의 질문에 조이는 놀랍게도 91년에 미국으로 이민 온 후 아들과 함께 네버랜드에서 마이클과 같이 있었던 경우는 지난 14년 동안 4번이라고 말했다. 물론 네버랜드만이 마이클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아니었을 것이다. 16년 증언에서 조이는 LA 센트리 시티와 웨스트우드에 있는 마이클의 아파트에서도 롭슨이 몇 번 마이클과 잠을 자곤 했는데 그러나 종종 그 자리에는 다른 아이들도 같이 있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라스베이거스 Mirage 호텔에서 롭슨이 이틀간 마이클의 침실에서 같이 잔 적이 있지만 조이와 찬탈도 동시에 다른 방에서 묵었으며 또 한번은 마이클이 아내 리사와 다툰 후 롭슨의 헐리우드 콘도에서 이틀간 보낼 때도 롭슨이 거실에서 마이클과 같이 잤으나 바로 위층 침실에 조이가 있어서 언제든 계단을 타고 내려오면 바로 보이는 곳이었다고 한다.

    조이는 또 마이클이 롭슨보다 브렛 반스나 맥컬리 컬킨과 같은 다른 아이들에게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며 자기 아들이 살짝 이들에게 밀려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92년 마이클의 <Jam> 뮤직비디오에 아들을 출연시켜 달라고 한 사람도 본인이며 이것은 실제로 성사가 됐지만 이후 Dangerous 투어에도 마이클이 롭슨을 데려가주길 바랐는데 마이클은 그러지 않았고 대신 투어 중에 전화를 해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이것도 끝내 지키지 않아 6개월 간 마이클과 연락이 완전히 끊긴 적이 있다고도 말했다. 95년 인터뷰에서도 조이는 가족들이 LA로 이민을 오고 첫 18개월 간은 마이클 외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마이클마저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내 힘들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조이의 의하면 네버랜드에서 롭슨이 처음 마이클과 함께 잠을 자게 된 과정도 강제성과는 거리가 멀다. 마이클이 먼저 롭슨에게 같이 잘 것을 제안한 것이 아니라 조이가 롭슨이 마이클과 같이 자고 싶어하는데 괜찮겠냐고 물어봤고 마이클은 이에 롭슨이 원한다면야 괜찮다고 말했기 때문이다.[27] 이처럼 마이클이 이민까지 주선하며 자기를 항시 곁에 두고 성추행하려 했다는 롭슨의 주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의 증언 때문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A: My memory is in the entire time we’ve lived here since 1991, we’ve only been at the ranch with Michael on four occasions in 14 years.

    Q: Four occasions?

    A: Every other time we’ve been here without him.

    Q: Would that be the same for your son?

    A: Yes.
  • 2019/03/10 23:33 # 삭제

    05년 5월 6일자 조이 롭슨 증언.
    파일:조이 롭슨 증언3.png
    05년 증언에서 롭슨이 마이클과 처음 같이 자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조이 롭슨.
    롭슨은 13년 5월 <Today Show>에 출연해 마이클이 자기에게 한 짓들을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그의 진술은 종종 바뀌었고 심지어는 이전에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여줬는데 한번은 마이클 재단이 이런 점들을 지적하자 '기억이 진화한다'라는 말까지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16년 재판부는 롭슨이 12년부터 마이클과 관련된 내용으로 수백통의 이메일과 문자를 지인들과 가족들 그중에서도 특히 어머니와 주고받은 것을 알고 강제 공개 명령을 내렸는데 그중에는 네버랜드에서의 첫날밤과 첫주말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첫 미국여행에서 어떻게 마이클과 만났는지, 마이클이 자기들에게 준 물질적/경제적 지원과 선물이 뭐였는지 등을 조이에게 물어본 것이 있었다. 다만 이미 삭제됐거나 기술적으로 공개 불가능한 것들도 많아서 다 드러나지는 않았고 일부만 공개됐다. 롭슨은 원래 재판 내내 자신의 진술이 스스로의 기억에서 나온 것처럼 행동했었다.[28]

    특히나 주목할 만한 이메일이 하나 있는데 바로 90년 ~ 92년까지 네버랜드에서 보안요원으로 일했던 찰리 마이클스의 94년 조단사건 당시 증언에 대해 롭슨과 조이가 주고받은 것이다. 찰리는 90년 'Mother's Day'에 조이가 네버랜드에서 울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왜 그런 것인지 물었는데 조이가 말하길 마이클의 비서가 마이클과 롭슨이 네버랜드 극장에서 댄스 리허설을 하고 있으니 방해되지 않도록 조이는 극장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찰리는 네버랜드 메인 하우스에 있는 마이클의 침실에서 롭슨이 마이클과 함께 잠을 자곤 했는데 마이클이 허락하지 않아 조이는 메인 하우스에서 잠을 잘 수 없었다고도 주장했다. 롭슨은 16년 2월 이러한 찰리의 증언이 담긴 문서를 첨부하며 조이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고 조이는 "와우, 그 어떤 것도 사실이 아니야"라고 답장했다.[29] 그런데 그해 9월 롭슨의 수정된 고소문에는 놀랍게도 찰리의 증언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또한 롭슨이 14년 6월에 마이클에 대한 아동성추행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주로 대변하는 사이트인 <mjfacts.com>의 주소를 이메일로 본인에게 스스로 보낸 적이 있음이 드러났다. 마이클의 롭슨에 대한 상세한 성추행 의혹 글도 당연히 14년 6월 이전에 여러차례 게시됐던 곳이다. 물론 롭슨이 이 사이트에 어떤 도움을 요청할 목적으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16년 12월 12일자 재판에서 롭슨은 링크를 보낸 것은 인정하지만 왜 그랬는지 자기도 이유를 모르겠으며 그 사이트를 들어가 본 적도 없고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모른다면서 스스로 연관 관계를 전면 부정했다.
    파일:롭슨 이메일5.png
    마이클과 관련한 많은 세부사항들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알지 못한다며 어머니에게 질문하는 롭슨.
    파일:롭슨 이메일4.png
    찰리의 증언에 대해 그 어떤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답장한 조이.
    또 다른 이메일로 인해 롭슨의 거짓말이 들통나기도 했다. 13년 5월에 작성한 고소문에서 롭슨은 13년 3월에 변호인을 만나고 나서야 마이클 재단의 운영 사실을 알게 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미 11년에 재단이 추진중이었던 서커스 공연 <Michael Jackson ONE>에 참여하기 위해 롭슨이 재단의 책임자인 존 블랑카와 만난 적이 있음이 이메일을 통해 드러났다. 재단을 상대로 권리를 내세우며 손해보상 청구를 하기 위한 법적기한은 재단이 운영중인 것을 알고 있었다면 60일 이내다. 롭슨이 고소문에서 성학대 사실을 깨달았다고 밝힌 시기는 12년 5월, 즉 이때부터 60일 이내로 소송을 제기했어야 했으나 1년 가까이 늦은 것이다. 15년 판결문에서 판사는 롭슨이 이메일을 주고받은 11년 2월에 이미 재단의 운영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하며 재단에 대한 소송을 기각했다. 이와 관련한 롭슨의 거짓말은 또 있다. 11년 7월 롭슨은 <Vanity Fair>와의 인터뷰에서 앞서 말한 해당 서커스 공연에 본인이 고용됐으나 스스로 빠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존 블랑카는 롭슨을 고용한 적 자체가 없다고 반박했고 이에 롭슨은 이를 증명할 재단으로부터 받은 자료가 있다며 공개하겠다고 했으나 지금까지도 아무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롭슨은 학대 사실을 깨달은 이후부터 자꾸만 그 기억이 떠올라 더 이상 춤을 출 수도, 음악을 만들 수도, 영화를 볼 수도 없었고 또 연출(directing)도 하지 못하는 등 그 어떠한 종류의 연예 활동도 지속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소송을 제기한 것도 이에 대한 손해보상 차원이었으며 꾸준한 치료로 17년에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나서야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이 시기에 롭슨은 <Blake McGrath> 팀의 뮤직비디오 안무를 짜고 다이렉팅했으며 댄스 단편 영화 <Life in Color>와 <Flight>도 만들었고 자신의 댄스 강습을 SNS에 홍보하기도 했으며 또 14년에는 하와이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회사까지 등록했다.
    파일:롭슨 이메일2.png
    11년 당시 롭슨의 에이전트였던 줄리 맥도널드가 롭슨에게 보낸 이메일.
    파일:웨이드 롭슨 댄스 강습.jpg
    15년에 자신의 댄스 강습을 SNS에 홍보하고 있는 롭슨.
    다큐는 마이클이 롭슨에게 보낸 팩스 메시지에도 주목하며 그루밍의 과정이라고 암시한다. 공개된 팩스 메시지들은 링크를 클릭하면 다운받아 볼 수 있다. 다큐에서는 마이클이 롭슨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며 특히 "Make me happy little one and be the best. I love you"라고 적힌 메시지를 문제삼는데 어쩌면 이것이 가장 수위(?)가 센 표현일 수도 있다. 다른 메시지들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마이클은 롭슨을 'little one'으로 부르면서 롭슨에게 "항상 나의 친구가 돼 줘서 고마워", "넌 최고의 댄서야!", "넌 나에게 영감을 줘", "난 너가 그 어떤 아메리칸 아이들보다도 더 훌륭한 랩과 댄싱을 하면서 그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세상을 충격에 빠트리는 걸 보고 싶어. 난 너가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와 같은 내용들이 있기 때문이다. 외설적이거나 강압적인 메시지는 일체 없다.

    다큐는 롭슨 가족이 외출하고 돌아오면 거실이 온통 팩스 메시지들로 뒤덮여 있었다고 지적하며 이것도 그루밍으로 연결짓는다. 그런데 16년 9월 30일자 재판에서 조이가 말한 팩스 일화를 보면 마이클이 왜 그렇게 메시지를 많이 보낸 것인지에 대해 이유가 좀 다르게 나온다. 마이클이 처음엔 팩스를 어떻게 사용할 줄 몰라 그의 비서인 노르마를 통해 대신 보냈고 나중에 가서야 직접 보낼 줄 알게 됐는데 그때부터 마이클이 혼자서도 팩스를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해서 마구 보냈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이와 별개로 이런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이클이 보낸 메시지는 롭슨 혼자만 본 것도 아니었고 롭슨 가족 전체가 볼 수 있었다. 또 마이클은 조이에게도 "조이, 무엇이든 도울 수 있다면 뭐라도 할게. 사랑하고 항상 행복해", "조이, 자전거 가격이 얼마인지 팩스로 보내줘. 넌 정말 좋은 엄마야"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
    파일:조이롭슨 팩스.png
    마이클이 조이에게 보낸 팩스 메시지에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면 언제든 주저하지 말고 말하라고 적혀 있다.
    다큐에서 롭슨의 부인 아만다는 평소 아동성학대라는 것에 대해 잘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에 남편을 어떻게 도와야할지도 잘 몰랐다고 말했으나 정작 이들이 아동성학대 피해자를 돕는다는 목적으로 만든 펀드 모금 사이트에서는 아만다를 아동성학대 피해자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해당 소개 문구는 다큐가 미국에서 방영된 후 아무 해명도 없이 바로 삭제됐다.

    한편 롭슨과 세이프척이 공통적으로 말한 것 중에 하나는 마이클이 이들이 여자와 가까워지는 걸 질투해서 여자를 멀리하라고 세뇌시켰다는 것도 있다. 그런데 롭슨과 관련하여 이와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바로 마이클의 조카인 브랜디 잭슨인데 그녀는 마이클이 직접 자기와 롭슨을 연결해 줘서 7년간 사귀다가 롭슨이 여러 여자들과 바람난 것을 알고 헤어졌다는 트위터 메시지를 올렸다. 그리고 그 바람난 사건 중 하나는 당시 팝 음악계에서 매우 큰 스캔들이었다고 말한다. 현재 브랜디의 친구인 라리아 로페즈도 자기가 직접 곁에서 이들이 사귀는 것을 봤다며 이를 설명하는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상태다. 롭슨은 이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파일:아만다 롭슨.jpg
    롭슨 부부가 개설한 펀드 사이트에 아만다도 아동성학대 피해자였다고 소개.
    파일:브랜디 잭슨.png
    마이클이 직접 연결해줘서 7년간 롭슨과 사귄 적이 있다고 주장하는 마이클의 조카 브랜디 잭슨.
    현재 롭슨의 증인으로 알려진 인물들은 앞서 언급한 찰리 마이클스 외에도 블랑카 프란시아, 마크 퀸도이가 있는데 이들의 신뢰성에도 의문점이 있다. 먼저 86~91년까지 마이클의 가정부로 일했던 블랑카는 마이클이 롭슨과 함께 옷을 다 벗고 샤워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허나 이것은 이미 과거에 몇 번이나 번복한 적이 있는 주장이다. 먼저 93년 12월 프란시아는 2만 달러를 받고 다이앤 디몽드의 <Hard Copy> 쇼에 출연해 마이클이 아이들과 함께 샤워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고 인터뷰했으나 바로 다음달인 94년 1월 당시 조단 사건으로 증인 요청을 받고 증언했을 땐 <Hard Copy> 쇼가 정직하지 않게 자기의 얘기를 왜곡, 과장해서 편집했다고 주장하며 자기는 마이클이 아이들과 같이 샤워하는 장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05년 개빈 사건으로 검찰측의 증인으로 재판대에 섰을 땐 또 말을 바꿔 마이클과 롭슨이 같이 샤워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증언한다.[30] 심문 과정에서 왜 94년과 말이 다른 것인지 추궁당하자 블랑카는 당시엔 너무 피곤하고 긴장했기 때문이라며 다소 납득하기 힘든 해명을 했다. 블랑카와 관련한 이 모든 사실은 05년 4월 5일자 재판 문서에 나와있다.[31][32][33]

    마크(Mariano “Mark”) 퀸도이(Ofelia Faye "Quindoy")는 필리핀 변호사 커플로 89 ~ 90년까지 마이클과 함께 일했는데 93년 조단사건이 터진 직후 각종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90년 2월에 쇼핑을 끝낸 마이클과 롭슨을 뒷자석에 태우고 차를 운전하고 있었는데 백미러를 보니 마이클이 롭슨의 성기 부위를 만지며 얼굴에 키스를 하고 있더라." 하지만 이들은 조단사건이 터지기 전에도 마이클에 대해 언론에 수차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지만 그때는 전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마이클에 대해 너무 좋은 말만 해줘서 92년 영국의 타블로이드지 <The Sun>의 알랜 홀 기자는 "마크 퀸도이는 믿을 수 없다. 이들은 침묵하는 대가로 잭슨에게 상당한 돈을 받았을 것이다"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였다. 마크 퀸도이는 그러나 이렇게 충격적인 주장을 한 뒤로도 수사당국에는 알리지 않았고 언론사에만 인터뷰를 했는데 이들과 만났던 언론인인 다이앤 디몽드와 스튜어트 화이트는 94년 <Tabliod Truth>에서 이들이 인터뷰 대가로 25만 달러에서 최대 90만 달러까지 요구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나중에 수사당국이 왜 자기들에게 진작에 알리지 않았냐 했을 때 이들의 답변은 "우린 그냥 목격자지 피해자가 아니니까요"였다. 한편 당시 퀸도이의 조카이자 법조계 학생이었던 글렌 베네라시온은 마크 퀸도이를 돈을 노리는 기회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하며 이들과 엮여있는 게 부끄럽고 만약 재판이 열린다면 이들의 반대증인으로 출석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34]

    현재 롭슨과 세이프척처럼 어린시절 네버랜드에서 마이클과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마이클의 결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맥컬리 컬킨, 브렛 반스, 엠마뉴엘 루이스, 켈리 파커, 탈룬 자이툰, 브라이톤 제임스 등이 있다. 한편 13년 10월 제임스 세이프척의 사촌인 토니 세이프척도 마이클을 지지하는 메시지를 띄운 적이 있다.

    출처 https://namu.wiki/w/%EB%A7%88%EC%9D%B4%ED%81%B4%20%EC%9E%AD%EC%8A%A8/%EC%95%84%EB%8F%99%EC%84%B1%EC%B6%94%ED%96%89%20%EB%85%BC%EB%9E%80#s-5
  • 2019/03/10 23:37 # 삭제

    막상 미국 반응은 또 거짓 폭로 나왔네 식 반응이 많습니다.

    빼박이니 뭐니 하는 반응은 금시초문
  • .... 2019/03/11 09:38 # 삭제 답글

    사회고발 운운하며 그럴듯하게 포장해놓는 거짓말.
    그리고서 상대를 망가뜨리고서 거짓이 드러나도
    내가 거짓말을 한 것은 옳은 일을 하려고 한 것이라고
    그러니 사소한 거짓말이고 본질은 그게 아니라고
    자기합리화하는 악마보다 더욱 악마같은 작자들.
    그런 이들에 환호하는 이들이 오늘도 보이는군요.
  • sid 2019/03/11 22:33 # 답글

    빼박.. 이 좀 센 표현이긴 한데 저도 좀 가볍게 쓰다보니.. 암튼 뭐랄까 이 영화는 법적공방보다는 저 두 명의 그 때 기억과 그 이후 자신들의 삶에 미친 전반적 영향을 상세히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 것 같아요 MJ쪽 이야기는 거의 담지 않아 당연히 한쪽 편만의 이야기가 맞고요, 코리 펠드만처럼 상영 이후로 여전히 '내가 본 애들은 다 괜찮았다고 했다' '나한테는 절대 안그랬다'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요. 근데 며칠 후 희생자 편에 서겠다고 cnn에서 인터뷰를 다시 했네요.. 결론은 영화를 대체 어떻게 찍었는지 최소한 저 두 명의 말은 맞는 거 같은, 그래서 절대 그런 일 없었다라 주장하기 어렵게 만들긴 하는 영화인 거 같습니다. 저도 아직 보기 전이라 이 정도로... 그리고 전 가디안이나 살롱 가끔 보는데 상영 직후였으니 뭐 추후 시간의 경과에 따라 반응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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