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블랑카 - 멋있는 영화 영화


'그' 카사블랑카다. 워낙 명작이고, 아직도 여기저기서 패러디 되는 영화란 건 알았지만 아무래도 내 취향과는 너무 멀어 보지 않았다. 그러다 고전을 좀 볼까, 싶어 그래, 그렇게 유명한 영화라며?? 하는 마음으로 보게 된 영화. 찾아보니 진짜 옛날에 만들어진 영화더구만. 2차 세계대전 발발 후 상황을 담으며 거의 동시에 만들어진 영화니. 나는 그 시의적절함이 너무도 신기했다. 기획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좀 알고 싶었는데 워낙 옛날 영화라 자료가 잘 안찾아졌다.아무튼. 결론은 그럭저럭 잘 봤다는 것. 마지막에 살짝 울컥하기도 하고. 나야 왼갖 영화로 닳고 닳은 현대 영화 관람객이지만 과거 아직 때묻지 않은 관객들이었다면 펑펑 울 수도 있을 듯 했다. (나는 이런 남자 있으면 못 갈 듯) 이리 아기자기하고 이국적인 영화를 헐리우드 세트장에서만 찍었다니 진정한 헐리우드 영화란 이런 것이다, 라는 느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시작한지 30분이 지나도록 착한 놈 나쁜 놈 밖에 내용 파악이 잘 안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깜깜이인 전쟁 얘기가 배경인데다가, 그것도 중심이 아니라 다소 변방인 모로코 카사블랑카 지역의 특수성까지 더해져 무슨 얘긴지 알아먹느라 애를 먹었다. 거의 첫 10분은 연방 스탑을 눌렀다 뒤로 돌렸다 하며 봤고, 중간인가 위키를 찾아서 당시 프랑스 괴뢰 정권이었던 비시 정권을 찾아보고 나서야 간신히 배경에 대한 감이 좀 잡혔다. (지금보니 나무위키도 설명이 자세하구만) 휘유... 진입장벽 높다. 거기다 옛날 영화임에도 사건 진행 속도가 매우 빨랐다. 막 치고 나간다ㅋㅋ 영화 자체도 빠른데, 거기다 프레임 때문인지 마치 채플린 영화처럼 말소리들이 조금 격앙되고 빨랐다. 일부러 0.8 정도로 재생속도를 잠깐 내려보니 그제야 동작이나 말소리가 일반 속도가 되던데.. 흠. 이건 어디가 문제였는지 잘 모르겠다. 거기다 막 멋있게, 점잖게 보이려는 당시 영화 대본의 특징인지 엄청 돌려 말한다. 예스, 노 면 될 걸 '그랬다고 아니할 수 없지' 같은 느낌이랄까? 가뜩이나 전쟁영화 속 대사 뉘앙스 이해가 잘 안되는 사람인데 돌려서 말하니 계속 뭐라는겨? 의 상황 속출. 그래서 첫 30분은 진땀 흘리며 봤다. 진입장벽 역대급. 그 타임만 넘기면 그 담부턴 그럭저럭 쉽다. 

기라성 같은 남주, 여주 배우는 이 영화로 처음 만났다. 남주인 험프리 보가트는 세상 다시 없을 풍운아에 기지가 넘치면서도 순정을 지닌 멋진 남자로 나오지만 얼굴만 보면 좀 아저씨, 삼촌스런 모양새다. 여주인 잉그리드 버그만은 조각같은 미모가 빛이 난다. 영화 내용 상으로도 남자보다 많이 어린 설정으로 나오는 듯. 

남주인공을 보고 있자니 사실 참으로 오랫만에 영화에서 여자를 용서하고 위해주는 신사다운 남자를 본 것 같다. 항상 똑 떨어지는 정장 차림, 혼자 체스를 두는 모습, 괴로운 마음에 양주 한 병을 안주 하나 없이 비우는 모습, 그리고 영화 마지막 모습이 상남자스럽다. 그 유명하다던 "그 노래 좀 쳐봐요" 말고, "Here's looking at you, kid."라고 툭툭 날리는 멘트에 엄훠, 오빠, 가 절로 나온다. 뭐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라는 번역은 너무 나간 것 같고, 와일드하게 의역하면 "오빠가 여기 이렇게 보고 있다." 정도? (하고 나니 직역;;;) PC에 대한 반발인지 뭔지 남자들이 여자 면상을 주먹으로 때리는 끔찍한 장면을 대놓고 보여주는 영화도 꽤 되는 요즘, 이리도 듬직하고 점잖고 드넓은 아량을 지닌 남자를 보니 새삼스러웠다. 

여기 나오는 여자 주인공은 지금 기준으로는 정조가 꽤나 가벼운 여자다. 그것이 '여자의 마음은 갈대', '여자의 사랑은 무죄', '전쟁으로 선택의 기로에 몰린 가련한 여인' 식으로 포장되고, 두 사지멀쩡하고 정신 제대로 박힌 남성들은 이 여성을 서로 돌봐주겠다고 나선다. 이것은... 흠. 

다들 얘기하지만 남주와 프랑스 경찰서장 르노와의 츤데레 우정도 볼 만하다. 둘의 대사가 많고 재치가 있어 대본을 다운받아 읽어보려 했는데, 역시나 온갖 정보가 차고 넘치는 요새 세상에 뭐 한가지 제대로 끝맺기가 이리도 힘들다. 첫 페이지 좀 보고 아직 손 놓은 상태. 근데 대본의 지문까지 옛날 영어스러운 점도 웃겼다. 

아, 그리고 마지막에 살짝 또 웃긴 것. 중요한 조연인 흑인 피아니스트는 원래 드럼 주자라고... 영화 보면 피아노 대-충 치는 장면이 있다. 워낙 잘쳐도 그렇게 보이긴 하지만. 매우 천연덕스럽다. 사실 표정과 액션이 너무도 크고 자연스러워서 배우도 아닌 사람이라는데 외려 더 전문 배우같다. 그리고 또 깜짝 놀란 건 잉그리드 버그만이 잠깐 일루와 보라고 할 때 몸만 오는 줄 알았는데 바로 식탁 옆으로 피아노까지 끌고 온다ㅎㄷㄷㄷ 당시엔 홀 플로어에서 피아노를 자유롭게 끌고 다닐 수 있게 했나 봄ㅋ 


덧글

댓글 입력 영역